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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경건함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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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티아고
작성일 23-07-2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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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행 10:5~8, 개역 개정)


지난 주일 작은 씨앗 네트워크교회의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중 일부입니다.
인용된 구절의 앞에는 가이사랴에 고넬료란 사람이 있는데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이고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천사가 환상 중에 그에게 나타나 욥바에 거하고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불러오라는 명령을 하면서 인용된 구절로 이어집니다. 인용된 구절의 다음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천사가 이번에는 베드로의 환상 중에 나타나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와 그 안에 땅에 기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담겨있는 것을 보여주고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했는데 베드로가 율법에 명한 대로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부정한) 것을 결코 먹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일이 세 번에 걸쳐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고넬료의 집에 이르렀고,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며 집 안의 모든 사람이 성령 부으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사(基督敎史)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데, 그건 바로 복음이 이방으로 전해지는 첫 시작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복음이 마침내 이방인(이탈리아 사람) 고넬료에게까지 전해지며 성령이 이제 온 열방으로 퍼지는 서막이 올랐다는 뜻입니다. 저는 지난 주중에 본문 말씀을 다시 묵상하다가 한 가지 질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왜 하필이면 고넬료였을까?'였습니다. 본문에는 그가 경건하였기(행 10:2)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얼마나 경건하였기에 이방인을 대표하여 첫 세례를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에 관하여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경건함이란 말을 생각할 때, 더럽고 속된 것이 없는 신실하고 정결한 마음과 행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즘 언어로 대입하자면 날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가고, 주일 성수에 충실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찬양하고, 교회 사역에 열심을 지녀서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한마디로 예수에 미친 사람이야'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경건함이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고, 그래서 성령님께서 늘 기름 부으심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셔야만 경건함을 유지한다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 않나 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신앙생활을 지키며 지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 가운데 마지막에 나오는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라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다 이르다'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아서 보다 명확한 뜻을 알아보려고 여러 버전의 성경을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이 일을 다 이르고(개역개정) / 이 일을 다 고하고(개역한글) /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해 준 다음(공동번역) /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새번역) / 모든 일을 설명해 주고(공동번역) / he told them everything(NIV) / he had declared all these things unto them(KJV)" 등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넬료가 집 안 하인 둘과 부하 한 명에게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건 지금 너희들이 욥바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는 길은 어떻게 가면 빠르고 정확하게 갈 수 있는지, 혹시라도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만약 베드로라는 사람이 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몽땅(everything) 빠짐없이 전해주었다(declare)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로마 제국의 백부장이란 위치는 그냥 명령 한마디를 하면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알아서 수행하는 자리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자기 부하를 고쳐 달라고 간청했던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집에 오실 필요 없이 그냥 한 마디 명령만 하시면 된다'라고 했던 사건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강력한 권위를 지닌 군인이 부하와 하인에게 마치 상관에게 보고하듯 겸허한 자세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울림이 마음속에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다는 말은 결국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하지도 못하면서 경건한 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늘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경건한 척을 하는 사람의 기도는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 18:11~12) 예수님께서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속에는 오만하고 위선적인 바리새인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쓰셨습니다.


고넬료란 사람을 통하여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그의 태도와 본질 앞에서 다시 한번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울러 세간에서도 회자하고 있는 '태도가 본질이다.'라는 말도 다시금 돌아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로 오늘의 이야기를 맺으려고 합니다.

"Manner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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